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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영화의 향기_이월 February

기사승인 2019.05.23  09: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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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신은주(인천문화재사진연구소 연구실장)

 

      이 월 February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는 이월은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참을 수 있는

내 안에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시간

이월은 사람들에게 어떤 시간일까?

절기상 입춘이 있어서 봄이 오긴 왔는데 여전히 날씨는 추워서 어깨는 움츠러든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있고 왠지 이 시간을 넘겨야 희망은 보일 것 같다. 그래서 이월은 길었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어정쩡하게 맞는 시간이라 자기 색깔이 없어 그냥 묻혀버리기에 알맞다. 우리 삶은 어떤가? 좋고 나쁜 순간보다는 어정쩡한 시간들이 더 많지 않은가? 희망과 절망으로 삶이 확실한 모습을 보여줄 때는 밝거나 어두움으로 그 색깔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 삶의 대부분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흘러간다. 그래서 ‘그냥 살았어.’라는 말에 누구나 공감을 하나보다.

영화 ‘이월’(감독 김중현)은 제 22회 부산국제영화제비전 감독상과 넷팩상 2관왕,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민경이라는 젊은 여성이 생존 앞에 어떤 선택을 하며 춥고 힘겨운 겨울을 견디는 지를 그녀의 시간과 공간을 따라가면서 이월의 의미를 드러낸 이 영화는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현실을 떠 올리게 한다.

직장이 없는 민경(조민경)은 학원에서 몰래 강의를 들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쫒겨 나고,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다가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의 합의금도 마련해야한다. 월세도 내지 못해 방을 비우라는 최후통첩 앞에 컨테이너박스에서 잠을 자고, 알바로 일하는 만둣집에서 몰래 돈과 만두를 빼돌리다가 주인에게 들키자 자신이 당한 모욕감을 오히려 한바탕 소란으로 되갚아주고 나와 버린다. 사귀고 있는 트럭운전사 진규(이주원)랑 컨테이너 박스안에서 관계를 하고 받는 5만원을 꼬박꼬박 양철 상자에 모으지만 그녀의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민경은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세서 상처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고 자존감이 낮은 주눅 든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성매매를 한 사람하고만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돈을 더 요구할 때도 당당하게 말을 한다. 무거운 배낭을 끌고 시골에서 요양 중인 친구 여진을 찾아간 민경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후 삶의 의욕을 찾아가는 여진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못되게 굴고 여진이 선물한 명품 원피스를 팔아버리고 돈을 먼저 챙긴다.

임시거처 컨테이너 박스로 다시 돌아온 민경에게 이혼남 진규는 손을 내밀고 민경은 따뜻한 집에서 진규의 어린 아들 성훈을 돌보며 몸이 편한 삶을 살아간다. 매일 5만원씩 진규에게 받아 원수 같은 아버지에게 영치금도 넣어 줄 정도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온라인으로 공무원 시험 강의를 들으며 취업 준비를 하는 민경을 성훈은 잘 따르고 진규는 시험에 떨어지고 자기랑 살았으면 좋겠다며 유혹한다. 돈을 더 주면 같이 살 수도 있다는 뜻을 비치며 민경이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던 차에 술을 먹고 운전을 하던 진규가 사람을 죽이고 구속된다. 어린 성훈을 민경에게 부탁하려는 진규를 떠나 다시 무거운 배낭을 이끌고 컨테이너 박스로 돌아와침낭속에서 밤을 보낸다. 아침에 트럭에 실려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그녀는 흔들리면서 창문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그녀의 이월(移越)이 옮겨지고 있었다. 그녀의 임시 거처는 모두 어정쩡했다. 보증금마저 남아있지 않은 월셋방, 컨테이너, 친구 여진의 집, 진규의 집은 모두 그녀가 잠시 머문 임시 공간으로 언젠가는 떠나야할 곳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거처를 컨테이너 박스로 정한 것은 이월이라는 의미를 시간과 공간에 잘 담아낸 영화적 장치로 주제 형상화에 깊게 녹아들었다.

이월은 다른 달보다 일수도 더 짧다. 그래서 빨리 지나간다. 이월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시간이면서도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월이 지나야 3월이 오고 따뜻한 봄이 오기 때문이다. 3월이 오면 꽃이 피고 세상은 온통 푸른 색이다. 이제야 봄이 온 것이다.

김중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이 시간을 겪은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추운 시절이 없다면 청춘이 아니지 않을까? 가진 것 없지만 젊음이 전부인 그녀가 주눅 들지 않는 것은 그녀 자신이 청춘이기 때문이다.

이월은 계절의 시간 2월을 의미하면서 이월(移越)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최용백 100yong100@hanmail.net

<저작권자 © 한국사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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