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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미술의 진보와 인간성 회복

기사승인 2017.07.26  20: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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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미술 이야기]

수태고지

비잔틴 화가들은 ‘수태고지’에 등장하는 백합이 순결을 의미하듯 그림 속 소재에 늘 알레고리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미술이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현대 화가들이 구상에서 추상을 얻는 것과 반대의 과정으로 중세 미술가들은 기하학적 추상에서 구상을 얻어냈다. 원과 삼각형으로부터 모든 형상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그림을 그리기위해 모델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세 화가들이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13세기 건축가 비야르 드 오네쿠르(Villard de Honnecourt)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그들이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얼마나 기계적인 방법으로 그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집트 미술처럼 캐논이라는 제작적 비례를 규정하고 정해진 규칙에 의해 그려왔다. 때문에 그들의 그림은 부분적인 협업이 가능했으며 여러 장인이 그린 그림을 서로 맞추기만 하면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에게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단지 정해진 틀 안에서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기술자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그들을 예술가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중세를 대표하는 고딕양식은 12세기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고딕양식의 발명으로 로마네스크의 거대한 기둥은 사라지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밝은 빛이 들어오는 건물을 만들 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영롱한 빛과 성화는 성당내부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에 대한 경외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고딕양식에 채용된 스테인드글라스

이처럼 중세미술이 그나마 진보적 움직임을 보인 것은 10세기가 지난 후였다. 중세 말, 십자군 원정으로 근동과의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신무역로가 개척되고 교역이 확대된다. 이 시기에 나타난 신흥 상공업자들에 의해 미술시장은 새로운 조류가 일기 시작한다. 중산층인 이들 부르주아는 그들의 주택과 별장내부를 장식할 성화를 의뢰하면서 간접적으로 미술가들을 후원하게 되고, 이들에 의해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중세 말 상인과 미술가들은 길드라는 연합체를 구성했는데 길드체제에서 미술가들은 개인보다 집단의 일원이었으며, 창작자이기보다 기능공으로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세미술의 흐름은 한 미술가에 의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조토, '그리스도를 애도함'

‘그리스도를 애도함’이라는 그림을 보면 그동안 1000년간 그려졌던 중세 비잔틴 회화와는 많이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그동안 배경으로 장식되었던 금 대신, 푸른 하늘이 그려졌으며, 천편일률적이던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다양성이 발견된다. 또한 사람들의 형태는 조각을 보는 듯 입체감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중세의 비현실적 종교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라고 하는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이다. 조토의 그림을 본 많은 화가들에 의해 신 중심의 중세미술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미술이 시작되었다.

신현국 nssetter@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사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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