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기독교와 중세미술

기사승인 2017.07.10  00:23:39

공유
default_news_ad1

- [사진미술 이야기]

그리스 미술의 진보는 기술적 진보 측면에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룩한 것처럼 보였으며, 2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완벽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미의 형태적 의미를 거부하며 오히려 퇴보의 길을 자처한다. 물론 당시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로마 멸망 후 잔인한 고트족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삶은 나아질 길이 없었고, 그들을 보호해 줄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신뿐이었다. 당시 그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들에게 예술적 사고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생존을 위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했던 그들의 삶 역시 암흑의 시대였다. 로마의 통치를 대신하게 된 교황은 신권 정치를 가능하게 했고, 민중은 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종교화 즉, 이콘(Icon)화다. 인성이 배제되고 신성이 강조된 종교화는 글을 모르는 민중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신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화려한 색으로 장식했다. 그리스 미술이 형태를 강조했다면, 중세미술은 색을 강조한 셈이다. 형태란 보기에 따라 추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색은 늘 완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중세미술이 형태보다 색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신플라톤주의 영향 때문이다. 로마의 철학자 플로티노스(Plotinos)가 주장한 신플라톤주의는 현상계는 이데아에 존재하는 일자(절대자)로부터 유출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구원을 통해 그와 하나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자는 가시적으로 느낄 수 없는 오묘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오묘한 빛에 대해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색을 통해 영적세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중세 미술가들은 금과 울트라마린 같은 흔치않은 원료로 종교화를 그렸으며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신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중세미술가들은 그리스미술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형태에 의한 조화와 균형미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현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현실의 정확한 묘사는 의미가 없었으며 내용과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형태에 있어서 그들은 그리스 미술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적 묘사를 배제하고 인성이 사라진 표정 없는 얼굴을 그렸다.

인간 보다 신이 중심이 된 그림과 조각을 만들게 된 것이다. 미술사에서 중세를 암흑기라고 규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리스 미술보다 퇴보된 듯한 그림과 조각은 거의 변화 없이 무려 1000년간 지속된다.

신현국 nssetter@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사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